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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전쟁(영어: French Revolutionary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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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18 11:05 조회8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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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공화국 정부와 공화제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 영국 · 러시아 · 프랑스 왕당파 등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프랑스 혁명 전쟁은 오스트리아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간섭을 계기로 프랑스 혁명 정부(지롱드파 내각)가 오스트리아에게 선전 포고(1792년 4월 20일 )를 함으로써 시작되어, 프랑스 북부와 동부 · 네덜란드 · 벨기에 · 북부 이탈리아 · 이집트 · 일부 식민지 등이 주요 전쟁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공격은 1792년 9월 20일 발미에서 중단되지만(→발미 전투), 1793년 혁명의 좌경화(루이 16세의 처형)와 혁명군의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현, 벨기에) 침투에 따라 1793년에는 영국 ·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국내의 반란과 함께 프랑스는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프랑스는 혁명의 열기에 의해 초래된 국가적인 전쟁에 참가, 국가 총동원 체제의 정비와 사단 편성의 도입을 비롯한 군사 혁신을 단행함으로써 반격을 가하였고 모든 정치적 · 경제적 · 군사적 역량을 동원하여 일련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1] 1796년 제1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프랑스 총재정부는 라인 방면에 2개 군, 북이탈리아 방면에 1개 군을 배치해 오스트리아를 포위 공략하는 작전을 시도했다. 1796년 10월 17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체결한 캄포포르미오 조약에 의해 일단,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탈퇴했고, 이로써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은 붕괴되었다. 1798년,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오스트리아가 다시 참전하자 프랑스는 다시 열세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아래, 이집트 원정에서 귀환한 나폴레옹이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 보나파르트의 반격으로 오스트리아는 1801년의 뤼네빌 조약으로 다시 강화하였고, 영국도 1802년 3월 25일 아미앵 조약에 응했다. 이것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은 끝이 나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혁명 정부의 국제적 승인과 대폭적인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미앵 조약 이후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고, 1803년에는 다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상태로 들어가,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1803~15)으로 돌입한다.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국민개병제가 실시되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주요 인물로 부각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보여준 공화제 프랑스의 성공적인 모습은 유럽 각 지역에 있던 공화주의자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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