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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군주들은 프랑스 혁명의 동향을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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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18 11:06 조회9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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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는 프랑스 왕가와 인연으로 일찍부터 반혁명의 입장을 표명했다. 1791년 6월, 루이 16세 일가의 프랑스 탈출이 실패로 끝나면서(바렌느 사건) 즉시 프랑스에서 망명 귀족(에미그레)과 연계해 반혁명 십자군의 결성을 유럽 각국에 호소했다. 그러나 요청에 응한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 만으로 결성에는 이르지 않았다. 1792년 3월 구스타프 3세가 암살 되자, 스웨덴은 혁명 전쟁에 참가할 명분이 없어졌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에도 해결책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레오폴트 2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친오빠로 혁명이 과격화됨에 따라 친족에게 가해지는 위험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1791년 8월 27일 레오폴트 2세는 망명 귀족인 아르투 백작(루이 16세의 동생)의 중재 하에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공동으로 《필니츠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왕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혁명에 개입할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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